각자가 고른 병들이 말보로로 모인 밤
6월 5일 뉴질랜드 와인 모임에서는 각자가 골라 온 병을 하나씩 열었다. 맞춘 것도 아닌데 와인들이 거의 말보로 쪽으로 모였고, 피노 누아와 쇼비뇽 블랑을 번갈아 마시다 보니 같은 지역 안에서도 향과 산도가 꽤 다르게 느껴졌다.
지난번 뉴질랜드 모임은 준비된 라인업을 따라가며 마시는 자리였다면, 이번에는 우리가 직접 고른 와인을 들고 온 자리였다. 그래서 더 편했고, 어떤 잔이 더 맛있었는지,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향이 살아나는지 같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.
화이트와 레드를 번갈아 본 흐름
서로 맞춘 것도 아닌데 가져온 병들이 대부분 말보로로 모였다는 점이 가장 신기했다. 품종도 피노 누아와 쇼비뇽 블랑으로 자연스럽게 나뉘어서, 화이트의 산도와 레드의 향, 떫은맛을 번갈아 비교하기 좋았다.
사진 속 여섯 병은 그날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. 말보로 쇼비뇽 블랑으로 시작해 피노 누아를 비교하고, 후반에는 Mission Estate와 Jacob's Creek까지 이어졌다. 병이 여섯 개라 한쪽으로만 흐르지는 않았고, 산도와 향, 묵직함이 조금씩 달라지는 게 재미있었다.
Tesco Finest로 시작한 첫 잔
처음 마신 Tesco Finest 말보로는 과일향이 먼저 올라왔고, 질감은 살짝 오일리하게 느껴졌다. 깔끔한데 여운이 의외로 오래 남아서 첫 잔으로는 꽤 선명한 인상을 줬다.
Matua로 이어진 산도와 향
Matua로 넘어가니 색부터 더 진하게 보였다. 향도 오래 남고 오일리한 느낌이 있었는데, 많이 떫지는 않으면서 산도는 꽤 높아 초반부터 비교할 포인트가 많았다.
Matua 쇼비뇽 블랑은 산도와 맑은 인상을 다시 확인하게 해 준 병이었다. 같은 말보로라도 피노 누아와 쇼비뇽 블랑을 번갈아 마시니 향의 결이 더 또렷하게 갈렸다.
중간에는 새콤하면서 살짝 떫은맛이 있고, 깔끔한 느낌과 풍부한 과일 향이 같이 이어졌다. 산도 중심으로 보던 초반 인상이 과일 향 쪽으로 한 번 더 넓어졌다.
시간이 지나며 열린 피노 누아
말보로 피노 누아는 처음엔 향이 진한데도 특색이 크지 않고 쌉싸름하게 느껴졌다. 그런데 잔에 조금 두고 나니 향이 더 강해지고, 떫은맛이 남아 있어도 훨씬 괜찮아졌다. 뒤로 갈수록 묵직함도 살아났다.
Mission Estate로 선명해진 후반부
다시 Matua를 마셨을 때는 향이 좋고 떫은맛이 적어서 앞서 마신 말보로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다. 초반에는 색이 먼저 보였다면, 이쯤부터는 향과 질감의 차이가 더 크게 들어왔다.
Mission Estate Winery는 향이 더 진하고 드라이한 느낌도 강했다. 산도는 높았지만 인상은 맑아서, 피노 누아가 묵직하게만 가는 게 아니라 꽤 선명하게도 느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잔이었다.
Jacob's Creek의 묵직한 마무리
마지막은 Jacob's Creek였다. Winemaker's Reserve Cabernet Sauvignon 라벨이 보이는 병이었고, 맛은 확실히 더 진하고 떫었다. 새콤한 맛도 강하고 묵직해서, 앞의 말보로 와인들과는 다른 무게감으로 마무리됐다.
결국 이 날이 재미있었던 건 누가 더 잘 맞혔는지가 아니었다. 각자 가져온 병들이 우연히 비슷한 방향으로 모였고, 그 안에서 향과 산도, 떫은맛을 서로 다르게 느껴보는 시간이 됐다.
다음 모임이 기다려진 이유
다들 초보라서 오히려 편했다. 어려운 말보다 향이 좋다, 산도가 높다, 덜 떫다 같은 말을 그대로 꺼낼 수 있었고, 그런 대화가 다음 모임을 더 기다리게 했다. 말보로로 우연히 모인 하루는 와인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는 걸 느끼게 해줬다.